[뉴스에프엔 김규훈 기자] 유럽연합(EU)이 폐차 차량 문제 해결과 순환경제 활성화를 위해 자동차 산업 전반을 재설계하는 획기적인 합의에 도달했다. 차량의 설계부터 생산, 사용 종료 이후 처리까지 전 주기를 포괄하는 새 규정이 마련되면서, 유럽 자동차 산업은 자원 효율성과 환경 보호를 중심으로 한 구조적 전환을 맞게 됐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15일(현지시간) 유럽의회와 이사회 간 ‘수명 종료 차량(End-of-Life Vehicles, ELV)’ 규정에 대한 임시 합의가 도출된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이번 합의는 폐차 차량 관리 체계를 전면 개편해 자원 손실을 줄이고, 재활용과 재사용을 확대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스테판 세주르네 EU 번영·산업전략 담당 부위원장은 “재활용과 순환성 강화는 유럽 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핵심 전략”이라며 “이번 합의는 유럽 전역의 재활용 공급망에 실질적인 비즈니스 기반을 제공하고, 재활용 산업을 강화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사라지는 차량’ 문제에 칼 댄 EU
자동차 산업은 EU에서 철강, 알루미늄, 구리, 플라스틱 등 원자재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산업 중 하나다. 하지만 매년 약 300만~400만 대의 차량이 등록 말소 이후 행방이 불분명해지며, 적절한 폐기·재활용 여부를 추적하지 못하는 문제가 지속돼 왔다.
이로 인해 불법 수출, 부적절한 처리에 따른 환경 오염, 경제적 가치 상실 등이 반복되었고, 기존 EU 규제가 순환경제 전환을 뒷받침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이에 EU 집행위원회는 2023년 7월 새로운 ELV 규정을 제안했고, 이번 정치적 합의를 통해 법제화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 새 규정은 기존의 분산된 규칙을 EU 전역에 적용되는 단일·조화된 체계로 대체한다.
‘폐차 차량’ 기준 명확화… 불법 수출 차단
새 규정의 핵심은 언제 차량이 ‘수명 종료 차량’으로 분류되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도입한 점이다. 원칙적으로 완전히 수리 불가능한 차량은 허가된 시설에서 분해·처리해야 하며, 역사적 가치가 있는 차량은 예외로 인정된다.
이를 통해 당국의 집행력을 높이고, 불법 수출과 부실 처리를 차단할 수 있을 것으로 EU는 기대하고 있다.
설계 단계부터 ‘재활용 의무’
이번 규정은 차량 설계 단계에서부터 순환성을 반영하도록 강제한다. 제조업체는 차량을 쉽게 분해·수리·재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하며, 수리 및 폐차 처리에 관한 상세한 정보 제공 의무도 부담하게 된다.
특히 EU는 사상 처음으로 재활용 플라스틱 사용 의무 목표를 도입했다.
2036년부터 차량에 사용되는 플라스틱의 최소 25%는 재활용 원료여야 하며, 이 가운데 20%는 폐차 차량에서 회수된 플라스틱이어야 한다. 이 기준은 EU 내 생산 차량뿐 아니라 수입 차량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자원 안보·공급망 회복력 강화
EU 집행위원회는 새 규정이 매년 ▲희토류 수백 톤 ▲철강 500만~600만 톤 ▲알루미늄 100만~200만 톤 ▲구리 최대 30만 톤을 재활용·재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폐차 차량에서 회수되는 플라스틱의 최소 30%도 재활용 대상이 된다.
이는 수입 원자재 의존도를 낮추고, 글로벌 공급망 불안에 대한 유럽 산업의 회복력을 높이는 동시에 경쟁력 있는 친환경 자동차 산업을 육성하는 기반이 될 전망이다.
향후 절차는 이번 합의안은 앞으로 유럽의회와 이사회의 공식 채택 절차를 거치게 된다. 규정은 EU 공식 저널에 게재된 뒤 20일 후 발효되며, 이후 유럽 전역에서 폐차 차량 관리의 새로운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