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에프엔 김규훈 기자] 탄소중립과 제로에너지건축 정책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건축물 에너지 성능의 핵심 기준인 단열재 ‘장기성능값(LTIM)’ 적용이 2~3년째 지연되고 있다는 지적이 다시 제기됐다.
KS 규격 개정과 시험법 마련 등 제도적 준비는 이미 마무리됐지만, 설계 기준 반영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PF(페놀폼) 단열재의 인체 위해성, 장기 성능 저하, 폐기물 환경부하 등 핵심 쟁점이 충분히 논의되지 않은 상황에서 “현 상황이 지속될 경우 2026년 제로에너지건축 의무화 일정도 흔들릴 수 있다”는 업계의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한국발포플라스틱재활용사업공제조합은 9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단열재 안전성, 환경성, 제도 운영 실태를 설명하며 정부의 기준 강화와 제도 점검을 촉구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강병부 공제조합 이사장, 이창훈 부이사장, 문훈기 한국발포플라스틱공업협동조합 이사장, 장철순 전무, 김상규 품질·기술본부장 등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조합 측은 2025년 국정감사에서 제기된 단열재 유해성 논란, 개정된 KS 규격의 미반영 문제, 폐기물 증가 우려 등을 거론하며 “정부가 단열재 정책 전반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철순 전무는 “현재 제도는 단열재의 장기적 환경부하나 성능 변화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며 안전·환경 기준 강화를 요청했다.
최근 시장 점유율이 증가하고 있는 PF 단열재를 둘러싸고 ▲인체 위해성 ▲장기 성능 저하 ▲부식 가능성 등 안전성 논란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장철순 전무는 PF·PIR·PUR·XPS 등 독립기포 구조 단열재는 시간이 지날수록 내부 발포가스가 빠져나가는 ‘경시변화’ 특성을 지니며, 단열 성능이 약 28~32% 감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장 전무는 “초기값만으로 설계할 경우 건축물 수명 동안 에너지효율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며 ▲KS M ISO 4898 준수 ▲ISO 11561 장기성능 시험법 도입 ▲에너지절약설계기준 개정
등 제도 보완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또한 PF 단열재는 과거 포름알데히드 방출 논란이 있었고 일부 해외 연구기관은 공공건물 사용 제한을 권고한 사례도 있다고 밝혔다. 제조 과정에서 산성 촉매가 잔류할 경우 금속 패널 부식, 데크 손상, 콘크리트 중성화 등 구조적 손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강병부 이사장은 “북미에서는 PF 사용으로 지붕 시스템 파손 사례가 발생해 특정 자재에서 제외된 사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문훈기 이사장은 “EPS·XPS는 재활용이 가능하지만 PF·PUR 등 열경화성 단열재는 재활용이 불가능해 소각 후 매립에 의존한다”고 설명했다. PF·PUR의 경우 소각 잔재물이 10~30% 발생해 매립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글라스울은 분진 위해 가능성과 매립 불가 문제로 인해 2026년부터 수도권 매립지 반입이 전면 금지될 예정이다.
화학경제연구원 분석에서는 PF 폐기물량이 2023년 대비 2027년에 약 58% 증가할 것으로 전망돼 장기적 폐기물 관리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창훈 부이사장은 “장기성능값 도입을 위한 KS M 4898 개정과 시험법이 이미 마련됐지만, 국토부의 설계 기준 반영 일정이 확정되지 않고 있다”며 현장 적용 지연을 지적했다.
김상규 본부장은 “독립기포 단열재는 시간이 지날수록 성능이 떨어지지만, EPS는 생산 후 180일이 지나면 성능 변동이 거의 없다”며 “정확한 에너지 평가를 위해서는 초기값이 아니라 25년 평균 성능값을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녹색건축물 기본계획(1~3차)에 장기성능값 도입이 포함돼 있으나 실행 시점이 확정되지 않아 제로에너지건축 일정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에 전문가들은 장기성능값 제도의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제품군 특성에 따른 과학적 검증 ▲단계적 시행 ▲시장 혼란 완화 등을 핵심 조건으로 제시했다.
한 연구기관 관계자는 “정책 목표와 산업 현실을 균형 있게 반영하는 조정 과정이 필요하다”며 기술 검증과 시장 수용성 검토가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열재 장기성능값 제도는 ▲건축물 에너지 효율 향상 ▲성능 검증 체계 확립 ▲폐기물 환경부하 완화 등 명확한 정책 목표를 갖지만, 업계 비용 부담과 시험·검증 체계 구축, 시장 충격 등의 현실적 제약도 적지 않아 당분간 논의가 이어질 전망이다.
앞으로 국토부가 ▲과학적 검증 강화 ▲업계 의견 수렴 ▲단계적 도입 로드맵 마련 등을 포함한 조정안을 제시할지가 업계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