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에프엔 한종갑 기자]입자 가속기의 안전한 운영은 보이지 않는 장치들에 의해 지탱된다.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CERN에서는 가속기 복합체의 안전성과 효율성을 보장하기 위해 빔 차단 장치(beam intercepting devices)의 설계·운영·유지보수가 핵심 과제로 관리되고 있다.

CERN 시스템 부서 산하 목표물·콜리메이터·덤프를 담당하는 STI 그룹은 빔 차단 장치의 전 수명 주기를 책임지며, 설계부터 제작, 설치, 운영, 방사성 폐기물 관리까지 CERN 내 여러 팀과 협력해 기술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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빔 차단 장치의 역할: 보호·생성·안전한 소멸

빔 차단 장치는 가속된 입자 빔을 가로채 ▲입자 생성 ▲민감한 장비 보호 ▲실험 후 빔의 안전한 소멸이라는 세 가지 목적을 수행한다. 고정 표적 실험에서는 파이온·뮤온·카온·전자·중성자 등 다양한 2차 입자를 생성하며, n_TOF 시설과 같은 경우에는 중성자를 핵물리 실험에 활용한다.

반면 중성자는 전하가 없어 궤적 제어가 어렵고, 전자기기 오류나 방사화 문제를 유발할 수 있어 특수 콜리메이터와 흡수체를 통한 정밀한 빔 성형이 필수적이다.

LHC를 지키는 콜리메이터와 빔 덤프

대형 하드론 충돌기에는 100개 이상의 콜리메이터가 배치돼 순환 양성자 빔의 헤일로를 제거하고 초전도 자석과 실리콘 검출기를 보호한다.

가장 극한의 장치는 빔 덤프다. 고광도 LHC(HL-LHC) 시대에는 한 번의 덤프에서 500~700메가줄(MJ)의 에너지가 약 90마이크로초 만에 침적된다. 전체 LHC 빔을 안전하게 받아낼 수 있는 위치는 오직 이 덤프뿐이며, 시스템 신뢰성은 장비 보호와 인원 안전을 동시에 좌우한다.

실제 사례가 남긴 교훈

LHC Run1 기간에는 빔 덤프 내부 질소 누출 문제가 발생했다. 고에너지 빔 흡수로 인한 비대칭 에너지 침적이 구조물 진동을 유발했고, 이는 장치 내 흑연 흡수체 손상으로 이어졌다.

CERN은 롱 셧다운 2(LS2) 기간 동안 덤프를 개조하고, 진동을 허용하는 구조와 원격 절단·검사 기술을 도입해 문제를 해결했다.

이 과정에서 얻은 데이터는 시뮬레이션 모델에 다시 반영돼 이후 설계 개선에 활용되고 있다.

극한 조건을 견디는 공학 기술

빔 차단 장치는 초고진공 환경에서 열 제거와 열기계적 응력 관리라는 이중 과제에 직면한다. CERN은 입자–물질 상호작용을 **FLUKA**와 같은 몬테카를로 코드로 시뮬레이션하고, 유한요소해석(FEA)과 유체역학(CFD) 분석으로 구조적 안정성을 평가한다.

특히 서로 다른 재료를 결합해 열전도성을 높이는 확산 결합(열등정 압착) 기술은 최근 핵심 기술로 자리 잡았다. 이 기법은 구리 합금, 스테인리스강, 텅스텐 등 이종 재료를 결합해 고출력 빔을 견디는 구조를 가능하게 한다.

HL-LHC·차세대 프로젝트로 확장

STI 그룹은 현재 HL-LHC를 위해 약 50개의 신규 콜리메이터와 3기의 새로운 빔 덤프를 개발 중이다. 일부 장치에는 탄소-탄소 복합재와 티타늄 합금 등 신소재가 적용돼, 기존 대비 약 30% 증가한 에너지를 처리하도록 설계되고 있다.

이 기술은 HI-ECN3 고출력 빔 덤프 시설과 고정 표적 실험, 그리고 향후 미래 원형 충돌기(FCC) 개념 설계에도 활용될 예정이다. FCC에서는 수백 kW급 고에너지 광자 빔을 안전하게 흡수해야 하는 새로운 유형의 차단 장치가 요구되며, CERN은 액체 납 흡수체와 같은 혁신적 해법을 검토 중이다.

가속기 안전의 핵심 인프라

빔 차단 장치는 실험 장비 뒤편에 숨겨진 장치이지만, 가속기 성능과 안전을 좌우하는 핵심 인프라다. CERN은 축적된 운전 경험과 실패 사례를 설계에 재반영하며, 전 세계 연구소와의 협력을 통해 기술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고에너지·고광도 가속기 시대로 접어들수록, 빔 차단 장치의 신뢰성과 내구성은 물리학 연구의 속도와 안전을 동시에 결정하는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