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에프엔 조남준 기자] 미국이 급증하는 전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원자력 발전 확대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않았던 우라늄 연료 공급망이 핵심 병목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기존 원전의 수명 연장과 차세대 원자로 도입에 정책·민간 투자가 집중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연료 공급 체계는 지정학적 위험과 구조적 제약에 노출돼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에서는 신속한 대응이 없을 경우, 연료 부족이 미국 원자력 확대의 속도와 안정성을 제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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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전기화가 촉발한 전력 수요, 원자력에 쏠린 기대

미국의 원자력 확대 움직임은 구조적인 전력 수요 증가와 맞물려 있다. AI 데이터센터 확산, 제조업 리쇼어링, 교통·건물 부문의 전기화는 상시 가동 가능한 저탄소 전원에 대한 수요를 크게 끌어올리고 있다.

안정적인 출력과 낮은 탄소 배출을 갖춘 원자력은 이러한 요구를 충족할 수 있는 대안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다만 최근 분석들은 원자로 건설과 병행해 충분하고 안정적인 우라늄 연료 확보가 필수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핵연료 사이클 라운드테이블 “연료가 속도를 좌우”

이 같은 문제의식은 최근 버지니아주 알링턴에서 열린 핵연료 사이클 라운드테이블에서도 확인됐다. 이번 회의에는 전력회사, 원자로 설계사, 규제기관, 업계 전문가 등 100여 명이 참석해 우라늄 연료 공급의 구조적 장벽과 대응 전략을 논의했다.

행사는 스탠퍼드대학교의 에너지 연구 프로그램인 STEER Initiative(Precourt Institute for Energy 및 SLAC National Accelerator Laboratory 연계)이 주최했다. 참석자들은 “원자로 투자에 대한 관심은 높지만, 연료 공급 제약이 이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네 단계로 나뉜 우라늄 연료, 곳곳에 취약성

우라늄 연료 공급망은 ▲채굴 ▲전환(conversion) ▲농축 ▲연료봉 제작의 네 단계로 구성된다. 각 단계마다 병목이 존재한다.

채굴: 세계 우라늄 생산은 카자흐스탄, 나미비아, 호주, 캐나다에 집중돼 있다. 미국은 비용과 광석 품질 문제로 생산 비중이 낮아 외국 자원 의존도가 높다.

전환: 채굴된 우라늄을 농축용 기체로 바꾸는 시설은 전 세계에 5곳뿐이다. 수요 불확실성과 가격 변동성으로 설비 증설이 지연되고 있다.

농축: 전 세계 농축 능력의 약 절반이 러시아에 집중돼 있다. 미국은 2024년 러시아산 우라늄 수입을 금지하기 전까지 농축 우라늄의 약 30%를 러시아에 의존해 왔다.

제작: 연료 펠릿과 연료봉 조립은 미국 내에서 가능하지만, 전문가들은 전 단계의 국내 역량 확대가 국가 안보 측면에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정책 지원에도 남은 투자 딜레마

미국 정부는 대응에 나서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는 최근 국내 농축 기업을 대상으로 기존·첨단 원자로용 연료 공급 계약에 27억 달러를 배정했다. 우라늄 연료를 전략 자산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신호다.

그러나 민간 투자를 가로막는 장애물은 여전하다. 전력회사들은 고가격 국면에서 장기 계약 체결을 꺼리고, 공급업체는 수요가 보장되지 않으면 신규 설비 투자를 주저한다. 이에 따라 정부가 ‘최후의 구매자’로서 수요를 보증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지정학적 불확실성 역시 변수다. 러시아산 농축 우라늄 금지 조치의 예외 적용 가능성은 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린다는 평가다.

차세대 원자로, 연료 압박을 키우다

Gen IV로 불리는 차세대 원자로는 기존보다 고농축 연료를 필요로 해 우라늄 수요 압박을 더욱 키울 가능성이 있다. 연료는 더 오래 사용되지만, 초기에는 채굴·전환·농축 능력에 부담을 주며 기존 원전 연료 가격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새로운 연료 형태는 상업적 경험 부족, 낮은 초기 제조 수율 등 기술적 난제를 동반한다. 현재 상업 운전 중인 4세대 원자로는 중국에 단 한 기뿐이다. 연료 사양 표준화와 설계자·제조사 간 협력 강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료 확보 없이는 핵 부흥도 없다”

라운드테이블 참가자들은 기술·경제·정책 불확실성을 줄이는 것이 기존 및 차세대 원자로 모두에 필수적이라고 결론지었다. 주요 대응 전략으로는 ▲국제 협력 강화 ▲지정학적 정책의 명확한 집행 ▲연료 제조 R&D 확대 ▲공공·민간 협력 기반의 장기 투자 유도 등이 제시됐다.

한때 주변 이슈로 여겨졌던 우라늄 연료는 이제 미국 원자력 확대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 요소로 부상했다. 안정적인 연료 공급망 확보 여부가 향후 미국이 증가하는 전력 수요를 안전하고 합리적인 비용으로, 필요한 속도에 맞춰 충족할 수 있을지를 결정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