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에프엔 김규훈 기자] 플라스틱과 PFAS(과불화화합물) 없는 식품 포장이 ‘대안’을 넘어 ‘표준’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영국 환경 NGO인 FIDRA가 수상 경력을 지닌 식품 포장 브랜드 Delipac을 공식 인정하며, 그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Delipac은 플라스틱과 PFAS를 배제한 Smart-Safe© 종이 기반 포장 솔루션으로 환경 문제 대응과 규제 선제 대응을 동시에 이뤄낸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영원한 화학물질’ PFAS, 식품 포장의 구조적 위험
PFAS는 1만 종이 넘는 화학물질 군으로, 물과 기름을 모두 튕겨내는 특성 때문에 오랫동안 식품 포장에 사용돼 왔다.
그러나 탄소–플루오린 결합으로 인해 자연 분해가 거의 불가능하며, 토양과 수계, 인체에 축적되는 대표적인 ‘영원한 화학물질’로 지목된다.
내분비계 교란, 생식 문제, 면역 반응 저하 등 인체 영향뿐 아니라, 야생동물과 생태계 전반에 미치는 장기적 위험이 잇따라 보고되면서 규제 압박도 빠르게 강화되고 있다.
문제는 일회용 플라스틱을 대체하는 과정에서, PFAS 코팅 종이·섬유 포장재가 새로운 오염원으로 확산돼 왔다는 점이다. 베이커리 봉투, 피자 박스, 종이컵, 퇴비화 용기 등 친환경으로 인식돼 온 제품 다수가 PFAS를 포함해 왔다.
“플라스틱이냐 PFAS냐”는 더 이상 선택지가 아니다
FIDRA는 영국 소매업체, 패스트푸드 기업, 정책 결정자들과 협력하며 PFAS 문제를 공론화해 왔고, 최근 들어 시장의 반응이 뚜렷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일부 대형 영국 슈퍼마켓은 전 제품군에서 PFAS를 단계적으로 퇴출하겠다고 약속했으며, 이미 매장 진열대에는 플라스틱·PFAS 모두 없는 대안 포장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FIDRA가 Delipac을 주목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Delipac은 플라스틱 코팅이나 불소계 장벽 없이도 식품 보호 성능을 확보한 종이 기반 솔루션을 상용화했다.
Delipac은 2025년 9월 영국 의회 환경감사위원회 초청을 받아 PFAS 없는 식품 포장 전환 사례를 공유하며 정책 논의의 한복판에 섰다.
영업이사 마크 힐람은 “The Co-op의 포장 기술자들이 PFAS 위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이 출발점이었다”며 “우리는 소매업체와 브랜드 소유주, 그리고 FIDRA와 협력해 PFAS 없는 대안을 실제로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그 결과 Delipac의 Smart-Safe© 종이보드는 기존 플라스틱·불소 코팅 종이를 대체하는 장벽형 식품 포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제품은 재활용 가능(EN13430), 가정·산업용 퇴비화 가능, 생분해성(EN13432)을 포함해 다수의 ISO·EU·FDA 식품 접촉 규정을 충족한다.
EU 2026년 PFAS 전면 금지… ‘선제 대응’의 의미
Delipac 사례가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EU 규제 일정 때문이다. 개정된 Packaging and Packaging Waste Regulation(PPWR, EU 2025/40) 제21조에 따라 2026년 8월 12일부터 EU 내 식품 접촉 포장재에서 PFAS 사용이 금지된다.
규정은 개별 PFAS 25ppb, 총합 250ppb 등의 엄격한 기준을 제시하며, 제조사와 수입업자에게 PFAS 프리 준수 책임을 명확히 했다.
이는 식품 포장 산업 전반에 공급망 감사, 소재 전환, 인증 재정비를 요구하는 대전환으로, Delipac과 같은 선제적 대응 기업의 경쟁력을 부각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FIDRA는 “PFAS 문제는 더 이상 미래의 위험이 아니라 현재의 선택 문제”라며, 식품 포장 전환 과정에서 ‘검증된 PFAS 프리 대안’을 채택하는 것이 필수라고 강조한다.
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해 또 다른 장기 오염원을 선택하는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Delipac을 둘러싼 이번 인정은, 규제와 시장이 동시에 움직이는 전환기의 신호탄으로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