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에프엔 김익수 기자] 유럽연합(EU)이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 회복과 전기차(EV) 전환 가속을 동시에 겨냥한 정책 재설정에 나섰다. 글로벌 경쟁 심화와 기술 전환 속도가 빨라지는 가운데, EU 집행위원회는 CO₂ 배출 기준을 일부 완화하고 규제 유연성을 확대하는 ‘자동차 패키지’를 통해 친환경 전환의 동력을 유지하면서도 산업 부담을 낮추겠다는 전략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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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자동차 산업의 생명선”
이번 패키지는 제조업계가 요구해 온 명확한 규칙, 행정 부담 완화, 기술 선택의 유연성에 직접 대응한다. 동시에 EU의 장기적 기후 중립 목표를 훼손하지 않겠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번영·산업전략 담당 부사장 Stéphane Séjourné는 “단순화와 유연성, 유럽 선호, 목표 지향적 지원, 혁신을 총동원해 유럽 자동차 산업의 리더십을 회복하겠다”며 “기후 전환을 이끌겠다는 약속의 연장선”이라고 강조했다.
CO₂ 기준, ‘목표는 유지·경로는 유연’
패키지의 핵심은 CO₂ 배출 기준의 이행 방식을 재설계한 점이다.
2035년 목표: 제조사는 배기가스 배출량 90% 감축을 달성해야 하며, 나머지 10%는 상쇄(EU 생산 저탄소강 사용, e-연료·바이오연료 등 승인된 대체수단)로 허용된다.
이는 기술 중립성을 강화해 배터리 전기차(BEV)뿐 아니라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주행거리 연장형(EREV), 마일드 하이브리드, 첨단 내연기관까지 공존을 허용한다.
또한 슈퍼 크레딧을 도입해 EU에서 생산되는 소형·저가 전기차를 장려하고, ‘은행·차입’ 메커니즘으로 2030~2032년 사이 배출 성과를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게 했다. 상업용 밴의 경우 2030년 감축 목표를 50%→40%로 낮춰 현실성을 높였다.
트럭·버스도 단계 조정… 장기 탈탄소는 유지
물류·산업의 핵심인 중대형 차량 부문에서는 2030년 목표 달성을 용이하게 조정하되, 장기 탈탄소화 궤적은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집행위는 비용 급증이나 운영 차질 없이 청정 기술 확산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수요 촉진을 위해 기업 차량에 대한 국가별 의무 목표를 도입한다. 공공 재정 지원은 점차 ‘EU 생산’ 저배출 차량에 연계된다. 이는 배출 감축을 앞당기는 동시에 중고 시장에 저렴한 저배출 차량이 빠르게 유입되는 효과를 노린다.
청정 이동성의 병목인 배터리 공급망을 위해 18억 유로 규모 ‘배터리 부스터’가 가동된다. 이 중 15억 유로는 EU 배터리 셀 제조사 무이자 대출로 배정된다. 상류 공급망 강화와 혁신 촉진을 통해 EU 기반 배터리 생태계를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오토모티브 옴니버스’로 불리는 규제 묶음 정비도 병행된다. 차량 시험 절차 단순화, 라벨링 규칙 조화, 전기 밴의 운전자 휴식 규정 내 동등 대우 등을 통해 연간 약 7억600만 유로의 비용 절감이 예상된다. 길이 최대 4.2m의 소형 저가 전기차에 대한 신규 차량 카테고리도 신설된다.
업계 “방향은 환영… 디테일이 관건”
업계는 전반적으로 환영 분위기다. European Automobile Manufacturers' Association(ACEA)의 사무총장 시그리드 드 브리스는 “전환 성공을 위해 필요한 유연성과 기술 중립성을 올바르게 인식했다”며 “다만 세부 설계가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
EU 자동차 패키지는 기후 중립이라는 목표를 유지하면서도 이행 경로를 현실화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 규제 유연화, 수요·공급 동시 자극, 배터리 투자까지 묶은 이번 조치가 유럽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 회복과 EV 전환 가속이라는 두 과제를 동시에 풀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