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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프엔 김맹근 기자] 지금 우리는 “탄소중립(Net Zero)”이라는 거대한 약속의 중간 지점에 서 있다. 재생에너지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지만, 정작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탄소 포집 및 저장 기술’, CCS(Carbon Capture and Storage)다. 2050년을 기한으로 삼은 넷제로 목표는 CCS 없이는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이 기후과학계의 일치된 진단이다. 하지만 이 기술은 여전히 ‘논쟁적’이고, ‘믿기 어려운’ 존재로 여겨진다.
영국은 이런 인식을 바꾸기 위해 CCS에 대한 정책적·산업적 투자를 본격화하고 있다. 영국 탄소 포집·저장 연구센터(UKCCSRC)는 연구자, 산업계, 정책결정자를 잇는 네트워크 허브로 기능하며 CCS 기술의 확산과 사회적 수용성 확보에 앞장서고 있다. 이들이 말하는 핵심은 분명하다. CCS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와 ‘지속성’의 문제라는 것이다.
UKCCSRC의 마티유 루퀴오 교수(셰필드대학교)는 “시멘트, 철강, 폐기물 소각 등 탈탄소화가 어려운 산업에는 CCS가 유일한 해결책”이라 말한다.
재생에너지로는 대체할 수 없는 부문, 즉 우리의 일상과 산업을 지탱하는 필수적인 요소에서 이 기술이 갖는 역할은 결정적이다. 전력 수요의 불안정성을 보완하는 유연한 발전 자원으로서도 CCS는 기존 재생에너지 시스템을 ‘보완’하는 열쇠로 작동한다.
영국 정부는 이를 인식하고 217억 파운드 규모의 CCS 프로젝트를 승인했으며, 추가로 90억 파운드를 투입해 주요 산업 클러스터 중심의 CCS 허브 개발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실상은 아직 초기 단계다. 저장 인프라만 앞서고, 정작 포집 시설은 턱없이 부족하다. 파이프라인만 설치해놓고 정작 보낼 이산화탄소가 없는 형국이다.
이 같은 비대칭 구조의 원인은 단순히 기술의 미비 때문이 아니다. CCS는 이미 연소 후 포집(post-combustion capture) 방식에서 80~90% 효율을 보이는 등 상용화 수준에 도달한 기술이다. 오히려 문제는 ‘경제성’과 ‘정치적 용기’다. 이 기술이 수익을 창출하는 방식은 아직도 불분명하다. 탄소저장 그 자체는 어떤 ‘수익’을 낳지 않는다. 결국 CCS는 공공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정책 설계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분야다.
여기에 또 하나 중요한 요소가 있다. 바로 ‘대중의 신뢰’다. CCS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이산화탄소는 파이프라인을 통해 지하 수천 미터에 주입되고, 저장된다. 그 과정을 대중이 체감할 수 없다. 그렇기에 기술의 안전성은 물론, 그것을 추진하는 ‘주체’에 대한 신뢰가 필수적이다. 지역 주민이 ‘왜 우리 지역에 이걸 하느냐’고 묻는다면, 과학은 대답하지 못한다. 공동체적 신뢰 없이는 추진 자체가 불가능하다.
결국 CCS는 기술이 아닌 ‘사회적 프로젝트’다. 에너지 정책이 산업정책과 맞물리고, 지역 경제와 공동체 가치, 정치적 리더십이 복합적으로 작동하는 영역이다. 우리가 CCS를 ‘기후 기술’로만 바라보는 순간, 이 기술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10년은 CCS의 명운이 갈릴 시기다. 영국이 보여주듯, 정책적 방향성과 산업계의 책임, 대중과의 신뢰가 하나의 방향으로 모일 때만이 이 기술은 진정한 ‘넷제로의 숨은 동력’으로 작동할 수 있다.
CCS는 선택이 아니다. 그것 없이는, 우리가 약속한 미래는 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