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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프엔 김맹근 기자] 탄소중립으로의 전환 속도가 빨라지는 가운데, 스웨덴을 중심으로 한 원자력 산업이 3D 프린팅, 즉 ‘적층 제조(Additive Manufacturing, AM)’ 기술을 통해 새로운 도약을 모색하고 있다. 노후 원자로의 부품 재생산은 물론, 소형모듈원자로(SMR) 등 차세대 원자로 개발의 핵심 기술로 부상하면서, 원자력 산업 전반에 걸쳐 혁신과 안전성을 동시에 끌어올리고 있다.

최근 외신에 따르면 에너지 전환 시대의 중심에서 원자력은 여전히 지속 가능한 전력 공급의 중요한 축으로 기능하고 있다. 특히 안정적인 베이스로드 전력을 제공하면서도 온실가스 배출이 거의 없는 장점 덕분에, 전 세계적으로 원자력의 재조명이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원자력 산업은 여전히 노후화된 인프라, 부품 조달의 어려움, 높은 신축 비용 등 구조적인 한계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3D 프린팅 기술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적층 제조(AM)는 금속 분말을 층층이 쌓아가며 부품을 제작하는 기술로, 복잡한 형상 구현과 빠른 설계 변경, 비용 절감에 강점을 갖는다. 특히 유연한 제조 공정을 통해 한 번 단종된 부품이라도 정밀하게 복원할 수 있어, 기존의 노후 원자로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핵심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스웨덴을 비롯한 유럽 일부 국가들은 이미 AM 기술을 활용해 구형 설비의 유지보수를 시도하고 있다. 1970~80년대에 시운전된 스웨덴 원자로들은 시간이 흐르며 부품 노후화와 단종 이슈에 직면했지만, 3D 프린팅 기술 덕분에 단종 부품의 리버스 엔지니어링 및 정밀 재현이 가능해졌다.

다만 원자력 산업 특성상, AM 기술의 도입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고 있다. 항공우주나 의료 분야와 달리 원자력은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규제를 받는 산업 중 하나다. 특히 원자로 내부와 같이 핵심 안전부품이 작동하는 환경은 고온·고압은 물론 방사선 및 중성자 조사 환경까지 감안해야 한다.

따라서 새로운 재료나 제조 방식은 오랜 기간의 실험과 검증을 필요로 한다. AM으로 제작된 금속 부품이 기존 주조 부품과 동일한 합금 조성을 갖더라도, 제조 방식이 다르면 미세조직 구조와 그에 따른 부식성, 피로강도, 조사 내구성에서 차이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AM 공정은 빠른 응고 속도와 층별 제조 특성상, 기존 재료에 비해 미세 구조가 불규칙하거나 다공성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이는 원자로 환경에서 치명적인 변수로 작용할 수 있어, 관련 부품은 철저한 실험 및 정밀 분석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이러한 검증 과정에는 이온 조사를 통한 방사선 손상 시뮬레이션이 우선 적용되며, 원자 단위 해상도를 갖춘 ‘원자 탐침 단층촬영(APT)’과 같은 첨단 현미경 기술이 동원된다. 이를 통해 AM 부품이 원자로 환경에서 어떻게 반응하고, 어떤 방식으로 손상되는지를 입체적으로 분석한다.

이런 분석 결과들은 규제 당국에 제출되어 라이선스 승인을 받기 위한 기초 데이터로 활용되며, 이 과정에서 수년간의 테스트와 서류 검토가 이루어진다.

적층 제조의 가장 주목받는 적용 분야는 차세대 원자력 기술, 특히 소형모듈원자로(SMR)다. SMR은 공장에서 사전 제작한 후 현장에 모듈 형태로 조립하는 시스템으로, AM의 빠른 프로토타이핑 및 유연한 설계 능력과 높은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스웨덴은 이를 위한 범국가적 이니셔티브로 ‘ANItA 역량센터(Advanced Nuclear Technology Initiative for a Sustainable Energy Future)’를 운영 중이다. 웁살라 대학교 주도로 찰머스 공대(KTH), 바텐폴(Vattenfall), 웨스팅하우스(Westinghouse) 등 주요 연구기관 및 민간기업이 참여해, 재료 과학, 설계, 라이센스, 대중 참여 분야에 공동 연구를 수행 중이다.

ANItA는 SMR 배치와 관련된 모든 요소 기술 중에서도 AM의 역할을 특히 강조하고 있다. 이는 미래 원자력 산업이 더 작고, 더 안전하며, 더 유연한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데 있어 적층 제조 기술이 중추적인 기여를 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전 세계적으로 저탄소 에너지 전환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3D 프린팅 기술을 통한 원자력 산업의 혁신 가능성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적층 제조는 단순히 노후 설비의 응급처치 수단이 아닌, 미래 원자력 기술 발전의 동력이자 핵심 기술로 자리잡고 있다.

스웨덴의 ANItA와 같은 국가 단위 협력 모델은 연구, 규제, 산업이 삼각 축을 이뤄 미래 에너지 시스템의 안전성과 지속 가능성을 함께 도모하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원자력의 미래는, 그야말로 한 층씩 ‘적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