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에프엔 조남준 기자] 플라즈마의 눈부신 섬광이 제어실 모니터를 가득 메운다. 네덜란드에 위치한 핵융합 재료 전문 연구기관 DIFFER(Dutch Institute for Fundamental Energy Research) 내 실험 시설 ‘매그넘-PSI(Magnum-PSI)’에서 또 한 번 인공 태양의 빛이 터졌다. 이곳은 섭씨 20,000도의 플라즈마를 텅스텐 샘플에 직접 조사해, 미래 핵융합 발전소의 내벽을 설계할 수 있는 세계 유일의 실험 환경을 제공한다.

핵융합 연구의 핵심 질문에 답하다

DIFFER는 핵융합로 자체는 보유하고 있지 않지만, "별을 닮은 인공 태양의 벽을 만들 수 있을까?"라는 핵심 질문에 집중한다. 연구소의 시설 책임자 한스 반 에크(Hans van Eck)는 “우리는 실제 핵융합로 대신, 플라즈마가 내벽 재료에 미치는 영향을 정밀하게 재현하고 연구할 수 있는 특수 장비를 갖췄다”고 설명한다.

이런 접근은 유럽연합 핵융합 연구 컨소시엄 ‘EUROfusion’으로부터 “필수 불가결”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핵융합 재료 연구의 중심지로 인정받았다.

ITER보다 앞선 실험, 세계 기록도 보유

핵융합로 내벽 재료로 주목받는 텅스텐은 3,400°C의 높은 융점을 자랑하지만, 수년간의 플라즈마 접촉 속에서는 취성 등의 손상을 피할 수 없다. 이에 따라 매그넘-PSI는 ITER(국제핵융합실험로)와 유사하거나 더 혹독한 조건에서 텅스텐을 실험할 수 있는 세계 유일의 장치로 부상했다.

2018년, 이 시설은 텅스텐 샘플을 18시간 동안 ITER 1년치 고출력 작동에 해당하는 플라즈마에 노출시켜 세계 기록을 경신했다. 이 실험은 ITER의 재료 선택이 타당함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근거가 됐다.

“재료가 진화하는 순간을 실시간으로 보다”

DIFFER의 또 다른 핵심 장비는 ‘이온 빔 시설(IBF, Ion Beam Facility)’이다. 플라즈마와 재료가 상호작용하는 순간의 미세 변화를 원자 단위까지 추적할 수 있는 이 장치는 최근 ‘UPP’라는 소형 플라즈마 장치와 결합돼 실시간 분석이 가능해졌다.

IBF 책임자 베아타 티부르스카-푸셸(Beata Tyburska-Pueschel)은 “지금은 플라즈마 노출 전후뿐만 아니라 노출 중에도 재료의 변화를 관찰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게임 체인저”라고 강조한다.

그녀는 특히, 핵융합로 내에서 중성자에 의해 발생한 결함이 수소 동위원소에 의해 채워지는 '자가 치유' 현상에 주목하고 있다. “기존에는 실험기기 간 전환으로 인해 관찰이 어려웠던 이 시너지 과정을, 이제 실시간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사용자 급증, 수요는 한계 초과

이온 빔 시설은 2021년 5명의 사용자와 500시간의 빔 타임으로 시작됐으나, 2025년에는 20명의 사용자와 3,000시간을 돌파하며 연구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플라즈마 재료 물리학자인 토마스 모건(Thomas Morgan)은 "이제는 다른 분야에서도 실험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전기화학적 물 분해나 용융염 원자로 관련 실험에도 IBF가 활용되고 있다.

자가 치유하는 액체 금속도 실험 중

DIFFER는 또 하나의 혁신 실험으로 ‘자가 치유 액체 금속 벽’을 개발 중이다. 플라즈마 손상을 입으면 그 위를 흐르는 액체 금속이 자동으로 메워 재료를 보호하는 방식이다. 모건 박사는 "이런 개념을 실현하기 위해 3D 프린팅 메쉬, 유체 순환 시스템, 플라즈마 노출 장치 등 복합 실험 환경을 구축했다"고 밝혔다.

연구소는 ‘작은 도시’... AI로 진화 중

이처럼 첨단 실험을 지속하기 위해 DIFFER는 자체 설계실, 기계공장, 전자·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팀을 포함해 전체 인력의 25%가 기술 지원에 투입된다. 반 에크는 “이는 단기간 프로젝트로는 실현 불가능하며, 장기적 자금 안정성과 전략적 비전이 뒷받침될 때 가능한 일”이라고 강조한다.

미래를 묻는 질문에 티부르스카-푸셸은 이렇게 답한다. “제 꿈은 IBF가 AI를 활용해 자율적으로 작동하는 것입니다. 언젠가 시스템이 스스로 ‘어떤 측정이 흥미로운지’, ‘어떻게 분석할지’를 판단해 밤새도록 실험을 수행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