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에프엔 조남준 기자]유럽 입자물리연구소(CERN)의 거대강입자충돌기(LHC)에서 놀라운 징후가 포착됐다. 과학자들이 그동안 실존 가능성조차 낮다고 여겨왔던 신비로운 복합 입자, '토포늄(toponium)'의 존재를 암시하는 이상 현상이 실험 데이터에서 발견된 것이다.
외신을 종합하면 CMS 공동연구진은 톱 쿼크(top quark)와 반톱 쿼크 사이의 덧없는 결합 상태로 추정되는 토포늄의 형성 가능성을 제기하며, 이 발견이 입자물리학의 판도를 바꿀 잠재력을 지녔다고 밝혔다. 특히 이 결합 상태는 지금까지 관측된 것 중 가장 작고 밀도가 높은 복합 입자일 수 있다는 점에서 학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가장 무거운 쿼크, 가장 짧은 순간의 결합
톱 쿼크는 모든 기본 입자 중 가장 무겁고, 수명도 극도로 짧아 입자 간 상호작용을 연구하기 까다롭다. 토포늄은 이처럼 ‘붙잡기 힘든’ 톱 쿼크와 반톱 쿼크가 잠깐 동안 결합한 상태를 의미한다. LHC에서는 고에너지 충돌을 통해 이런 쌍(tt̄)이 자주 생성되지만, 이들이 안정적으로 결합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여겨져 왔다.
그런데 2016~2018년 수집된 CMS 데이터에서, 연구진은 tt̄ 쌍이 생성되는 최소 에너지 임계값 부근에서 예기치 않은 '초과' 현상을 관측했다. 이는 토포늄 형성을 암시하는 결정적인 단서로 평가되고 있다.
■ 힉스? 아니면 새로운 물리?
이와 같은 데이터 이상치는 추가 힉스 보손의 존재로도 설명될 수 있다. 하지만 CMS 분석에 따르면 토포늄 가설이 데이터를 더 정밀하게 설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험에서 측정된 단면은 8.8 피코반으로, 약 15%의 불확실성을 포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5시그마 통계 임계값을 초과해 우연일 가능성을 사실상 배제했다.
■ 지금껏 가장 작은 복합 입자 될 수도
토포늄이 존재한다면, 이미 확인된 참(charm)-반참 쌍의 ‘차모늄(charmonium)’, 바텀(bottom)-반바텀 쌍의 ‘바텀오늄(bottomonium)’에 이어 쿼코니아 계열을 완성하게 된다. 특히 톱 쿼크의 질량 특성상, 토포늄은 지금까지 발견된 어떤 복합 입자보다 작고 밀도 높은 상태로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토포늄은 기존의 다른 쿼코니아처럼 자연적으로 붕괴되는 것이 아니라, 구성 입자인 톱 쿼크 자체가 1조분의 1초 내에 붕괴되며 결합을 깨뜨린다는 점에서 매우 독특한 존재다.
■ 아직은 '가능성', 하지만 판이 흔들린다
CMS와 CERN의 또 다른 실험인 ATLAS는 이 이상 현상을 추가 데이터로 검증 중이며,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만약 토포늄이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된다면, 이는 표준 모델의 경계를 넘는 새로운 물리학의 길을 여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우주의 가장 근본적인 비밀에 한 발짝 다가가는 이 발견은, 우리가 알고 있던 입자 세계의 퍼즐에 중요한 조각 하나를 더하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