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에프엔 김익수 기자] 중대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 환경과 안전을 위협하는 가장 복잡한 요소 중 하나는 액체 상태로 존재하는 방사성 물질이다. 격납건물 섬프, 냉각수, 지하수 등 다양한 경로를 따라 이동하는 이른바 ‘액체 원천 항(liquid source term)’은 사고 직후는 물론 중·장기 사후 관리 단계에서도 핵심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이 같은 문제의식 속에서 유럽연합(EU) 산하 EURATOM은 SOCRATES 프로젝트(2024~2028년)를 통해 중대 원전사고 시 액체 방사성 물질의 거동을 체계적으로 규명하고, 혁신적인 관리·저감 기술 개발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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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가 남긴 교훈, ‘오염수’ 문제의 구조적 해법

‘액체 원천 항’이란 중대 사고 중과 이후에 액체 매질에 포함된 방사성 물질을 의미한다. 이 개념은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대량의 오염수 처리 문제가 부각되면서 국제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수질 내 방사성 핵종의 화학적 거동과 이동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하면, 사고 대응과 환경 보호 모두 한계에 부딪힐 수 있기 때문이다.

SOCRATES 프로젝트는 기존 대형 경수로 원전뿐 아니라, 향후 도심 인접 지역에도 건설될 수 있는 소형모듈원자로(SMR)까지 고려한 사고 관리 전략을 연구 범위에 포함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액체 원천 항’ 연구의 세 축

SOCRATES는 중대 원전사고의 액체 방사성 물질 문제를 세 가지 축으로 나눠 접근한다.

첫째, 중대 사고 맥락에서 액체 원천 항 현상에 대한 최신 과학적 지식을 종합·검토한다. 기존 사고 해석 코드가 액체상 화학 종분화(용해성·불용성 형태)를 얼마나 정확히 예측하는지 평가해, 연구의 기준선을 설정한다.

둘째, 실험 연구를 통해 액체상 화학 진화, 연료 잔해 침출(leaching), 방사성 핵종 흡착 특성을 규명한다. 세슘(Cs), 스트론튬(Sr) 등 핵분열 생성물의 물속 거동, 실제 코륨(corium) 샘플을 활용한 시험, 콘크리트·금속·도료 등 다양한 물질과의 상호작용 데이터가 축적된다.

셋째, 액체 환경에서 Cs·Sr·U의 주요 화학 과정을 정의하고, 이를 기반으로 수학적·전산 모델을 개발한다. 해당 모델은 향후 유럽의 사고 분석 코드(ASTEC, AC2 등)에 통합돼 실제 사고 관리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것이 목표다.

사고 대응을 바꿀 ‘기술적 성과’

SOCRATES는 단순한 학술 연구를 넘어, 실질적인 사고 대응 역량 강화를 지향한다. 프로젝트를 통해 ▲포괄적인 최첨단(State-of-the-Art) 보고서 ▲수질 화학 실험 데이터베이스 ▲액체 방사성 물질 방출 예측 컴퓨터 코드 ▲제올라이트·점토·MOF·규산 기반의 혁신적 흡수 재료 ▲소형 방사화학 실험실 개발 등이 추진된다.

특히 소형 방사화학 실험실은 사고 초기에 세슘과 스트론튬 등 핵심 핵종을 신속하게 측정할 수 있도록 설계돼, 현장 대응의 속도와 정확성을 크게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원전 안전과 사회적 신뢰 회복을 동시에

SOCRATES 프로젝트의 궁극적인 목표는 중대 원전사고의 중·장기 관리 능력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방사성 물질의 환경 방출을 최소화하고, 폐기물 관리의 안전성을 높이며, 무엇보다 사고 이후 사회적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과학적·기술적 기반을 마련하는 데 있다.

VTT, CEA, EDF, ETH, JRC 등 유럽 주요 연구기관과 산업계가 참여하는 이번 프로젝트는, 향후 글로벌 원자력 안전 기준과 사고 대응 전략에도 중요한 참고 사례가 될 것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