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에프엔 김규훈 기자] 소방관들이 화재 현장에서 직면하는 위험은 눈에 보이는 불길뿐만이 아니다.

최근 외신을 종합하면 미국 애리조나 대학 연구진은 소방 장비와 소방용 폼에 포함된 ‘PFAS’ 화학물질이 유전자 조절에 영향을 미쳐 소방관들의 암·자가면역 질환·신경 장애 발병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미지 출처 : ©셔터스톡/Bborriss.67

■ 장비 속 ‘조용한 위협’…유전자 조절 miRNA 변화 확인

PFAS(과불화알킬 및 폴리플루오로알킬 물질)는 내열·내유·내수 특성으로 인해 소방 장비, 소방용 폼, 직물, 전자제품 등 광범위한 제품에 사용되는 합성 화학물질이다. 환경에 잔류해 '영원한 화학물질'로도 불리며, 특히 소방관들은 소방 장비와 연기 속 화학물질을 통해 일상적으로 PFAS에 노출되고 있다.

연구팀은 미국 6개 지역의 소방관 300여 명의 혈액 샘플을 분석해 9종의 PFAS 농도와 miRNA(마이크로RNA) 변화를 조사했다. miRNA는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분자로, 특정 유전자 작용의 스위치 역할을 한다. 이 연구는 PFAS 수치가 높을수록 특정 miRNA의 발현이 현저히 감소하거나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보고했다.

특히 PFAS 중 하나인 PFOS(퍼플루오로옥탄설폰산)는 암 억제 기능을 가진 miR-128-1-5p의 발현 감소와 연관이 깊었다. 그 외에도 다양한 PFAS 화합물이 암 관련 miRNA 조절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 암·신경·자가면역 질환까지...생물학적 경로와 연관

이번 분석 결과는 PFAS가 유발하는 유전자 조절 변화가 백혈병, 방광암, 유방암, 갑상선암, 간암 등 다양한 암종의 생물학적 경로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알츠하이머병, 루푸스, 천식, 결핵과 같은 자가면역 및 전염성 질환과의 연관성도 발견됐다.

연구진은 “이 변화들이 질병을 직접 유발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PFAS가 후생유전학적 변화를 통해 질병 발현의 환경적 기반을 만들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 예방의 열쇠: 조기 진단과 정책 변화

이번 연구의 중요한 시사점은 질병 발생 이전에 위험을 예측할 수 있는 miRNA 기반 바이오마커 개발 가능성이다. PFAS에 의해 바뀌는 유전자 조절 패턴을 조기에 감지한다면, 고위험 직업군인 소방관에게 사전 경고 시스템이 마련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러한 데이터는 향후 후생유전학적 변화를 역전시키는 치료제 개발과도 연결될 수 있다. 또한 보호 장비에 사용되는 화학 물질의 규제 및 설계 변경, 직업군 특화 건강검진 확대 등 정책적 변화로 이어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 소방관 보호 위한 구조적 조치 필요

이번 연구는 ‘소방관 암 코호트’의 일환으로 진행됐으며, 산업안전 전반에 대한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보이지 않는 화학물질에 의한 장기적 건강 위협에 대해 사회와 정부가 더욱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시점이다.

PFAS에 의한 후생유전학적 변화는 단순히 개인의 건강을 넘어, 직업적 노출군 전체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