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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프엔 김규훈 기자] 반도체, 스마트폰, 통신기기 등 현대 전자산업의 핵심 제품 대부분에는 PFAS(과불화알킬 및 폴리플루오로알킬 물질)가 사용된다. 이들 물질은 높은 열안정성과 화학적 불활성, 소수성 등 탁월한 특성 덕분에 식각, 리소그래피, 포토레지스트 제조, 회로기판 절연 등 공정에서 없어서는 안 될 소재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PFAS는 환경 중에 잔존성이 높고 분해되지 않는 특성으로 인해 ‘영원한 화학물질(Forever Chemicals)’로 불리며, 최근 각국 규제기관과 환경단체의 집중 감시 대상이 되고 있다. 전자산업 전반에 걸쳐 PFAS의 사용 실태를 투명하게 추적하고, 배출 경로를 통제하며, 대체물질을 개발하려는 노력이 산업계 전반에서 본격화되고 있다.
제조 전 공정에 침투한 PFAS…“대체 불가” 인식도 흔들린다
PFAS는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제조 과정에서 다양한 형태로 사용된다. 특히 반도체 생산에 있어서는 10나노미터 이하의 미세패턴 형성을 위한 포토레지스트와 반사방지 코팅 등에 핵심 계면활성제로 쓰인다. 이외에도 플라즈마 에칭을 위한 불소계 가스, 웨이퍼 세척용 탈지제, 고주파 회로의 유전체 재료, PCB 및 와이어 절연체에도 광범위하게 적용된다.
과거에는 PFAS의 기능적 특성 때문에 “대체 불가”로 간주되었지만, 규제 강화와 책임 비용이 현실화되면서 이제 산업계는 ‘기술적 대안의 문제’가 아닌 ‘지속가능한 전환’이라는 과제 앞에 놓여 있다.
Fab(반도체 공장) 내부까지 스며든 오염…“플라즈마 챔버·배기·용수 모두 경로”
문제는 PFAS의 사용이 직접적인 환경오염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플라즈마 에칭 과정에서 생성되는 PFAS 부산물은 장비 내부, 가스 라인, 배기 시스템 등에 침착돼 유지보수 시 확산될 수 있으며, 습식 공정에서는 잔류물로 남아 초순수(UPW) 처리 시스템까지 오염시킬 수 있다.
이외에도 화학물질 전달 라인의 씰, 개스킷 같은 부품이나 포장재, 운송자재에서도 PFAS가 검출되며, 이는 공급망 추적의 사각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장비 재활용 및 폐기 시에도 PFAS 잔류 오염은 주요한 환경·법적 리스크로 떠오르고 있다.
복잡한 공급망 속 정밀 추적 필요…첨단 분석기법 도입 확산
전자제품 제조현장에서 PFAS를 감지하고 정량화하기 위해선 고도화된 분석기법이 요구된다. LC-MS/MS(액체 크로마토그래피-질량분석), CIC(연소이온 크로마토그래피), 열탈착 GC/MS 등이 대표적이다. 제조사들은 PFAS의 흐름을 추적하기 위해 디지털 인벤토리 시스템을 도입하고, 일부 선도업체는 공급사에 불소 함유 여부를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규제 강화 현실화…유럽 REACH부터 미국 EPA까지 ‘압박’
규제도 본격화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수천 종 PFAS를 대상으로 전면 사용 금지를 추진 중이며, 단쇄 PFAS도 규제 대상으로 포함될 전망이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식수 중 PFAS 기준치를 대폭 강화하고, 100여 종의 PFAS를 ‘유해 물질’로 지정해 공공 수처리 시설에 감시 및 저감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미국 뉴욕, 워싱턴 등 일부 주는 PFAS가 포함된 전자 포장재나 난연제를 사전 금지하고 있으며, 이 같은 규정이 수출시장과 연결될 경우 글로벌 공급망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다.
대체물질·공정 전환 시도…“단순한 제거 아닌 시스템 혁신 필요”
업계는 탈PFAS를 위한 전략적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합성 왁스, 불소 프리 계면활성제, 에스톨리드 오일, 저온 공정 기술 등이 대체물질로 부상하고 있으며, 공정 설계에서도 고에너지 플라즈마 단계 노출을 줄이고 장비 내부 PFAS 잔류물을 줄이기 위한 설계 변경이 이뤄지고 있다.
동시에 ESG 연계 정책도 강화된다. 기업은 PFAS 사용 및 배출 관리를 공급사 평가, R&D 로드맵, 지속가능경영 보고서에 반영하고 있으며, 일부는 자체 규정보다 더 엄격한 내부 기준을 적용해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수동적 대응에서 능동적 제거로…“PFAS, 전자산업의 새 게임체인저”
전자산업이 직면한 PFAS 문제는 단순한 환경 규제 대응을 넘어, 산업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폐쇄 루프 시스템, 장비 수명 종료 처리, 고도화된 오염 추적 시스템까지 포함하는 포괄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는 전자산업의 지속가능성과도 직결되는 과제로, ‘보이지 않는 리스크’에서 ‘측정 가능한 책임’으로 PFAS 관리가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자제품의 고도화만큼 그 생산 과정도 투명하고 책임감 있게 관리돼야 하는 시대다. 전자산업은 이제 PFAS를 ‘필요악’이 아닌 ‘극복해야 할 기술적 도전’으로 보고, 새로운 제조 표준을 정립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