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예방적 미끄럼 제어 아키텍처. 크레딧: Nature Machine Intelligence(2025). DOI: 10.1038/s42256-025-01062-2
[뉴스에프엔 조남준 기자] 로봇이 유리잔이나 비닐봉지처럼 미끄럽고 불규칙한 물체를 안전하게 다룰 수 있다면? 서리대학교를 포함한 국제 공동 연구진이 로봇의 미끄럼 감지 능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새로운 제어 기술을 개발해 주목받고 있다. 이 기술은 단순히 더 강하게 쥐는 방식이 아닌, 인간처럼 ‘떨어지기 직전’을 감지하고 손의 움직임을 지능적으로 조절함으로써, 보다 섬세하고 안전한 로봇 동작을 가능하게 한다.
인간의 본능적 조절에서 영감을 얻다…예측 제어 방식 도입
이번 연구는 영국 서리대학교 컴퓨터공학 및 전자공학과(University of Surrey’s School of Computer Science and Electronic Engineering)의 주도 아래, KAIST(한국과학기술원), 애리조나주립대, 링컨대학교, 도시바 유럽 케임브리지 연구소가 공동 참여했다.
연구팀은 로봇이 물체가 미끄러질 가능성을 사전에 예측하고, 이에 따라 실시간으로 움직임을 조절하도록 설계된 '사전 예방적 미끄럼 제어(Predictive Slip Control)' 아키텍처를 구축했다. 이 시스템은 로봇이 단지 힘을 더 가하는 것이 아니라, 물체가 떨어지지 않도록 손의 위치나 속도를 조정하는 방식이다.
서리대 Amir Esfahani 부교수는 “사람이 접시를 옮길 때 단순히 더 세게 쥐는 것이 아니라 손의 각도나 움직임을 바꾸듯, 이 시스템은 로봇에게도 그런 본능적 반응을 학습시켰다”고 설명했다.
촉각 전방 모델과 궤적 변조의 결합…로봇의 손끝에 ‘감각’을 입히다
이번 연구의 핵심은 ‘촉각 전방 모델(Tactile Forward Model)’과 이를 기반으로 한 궤적 변조 전략이다. 로봇은 물체가 미끄러지기 시작할 징후를 감지하면 기존 계획된 움직임을 즉각적으로 조정해 안전하게 물체를 유지한다. 연구팀은 이를 통해 로봇이 훈련받지 않은 물체나 새로운 경로에서도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특히 이 기술은 깨지기 쉬운 유리병, 둥근 의료기기, 미끄러운 포장재 등 기존 자동화 시스템에서 취급이 어려웠던 대상에도 적용할 수 있어, 제조·물류·의료 현장에서 로봇 자동화의 폭을 획기적으로 확장할 수 있다는 평가다.
다양한 산업 현장에 응용 가능…“로봇이 일상 속으로 더 가까이”
연구팀은 이 기술이 로봇 외과 수술, 정밀 조립, 물류 포장, 고령자 돌봄 로봇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용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존의 로봇은 예상치 못한 마찰력 변화나 섬세한 물체에 취약했지만, 이번 기술은 인간에 가까운 반응성을 구현함으로써 ‘안정성’과 ‘정밀성’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다.
Esfahani 교수는 “우리는 로봇이 일상 생활에 진입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전환점을 목격하고 있다”며 “이번 연구는 로봇이 인간 환경에 더 자연스럽게 적응하도록 만들 수 있는 기술적 기반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향후 로봇공학 발전의 디딤돌…“보다 섬세하고 똑똑한 손을 가진 로봇으로”
이번 성과는 세계적 학술지 Nature Machine Intelligence에 2025년 7월 게재되었으며, 로봇이 단순 반복 동작을 넘어서 상황에 따른 섬세한 판단과 제어가 가능한 존재로 진화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연구진은 이 기술을 통해 향후 산업용 로봇은 물론, 인간 보조 서비스 로봇에까지 응용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