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에프엔 조남준 기자]줄자를 끝까지 뽑아보며 장난을 쳤던 어린 시절, 그 단순한 도구가 로봇 공학에 새로운 혁신을 불러올 줄은 몰랐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디에이고(UC San Diego)의 연구팀이 줄자 구조에서 착안한 로봇 그리퍼(GRIP-tape)를 개발했다.

최근 외신을 종합하면 이 장치는 토마토나 레몬처럼 부드럽고 형태가 다양한 과일과 채소를 섬세하게 집을 수 있으며, 농업은 물론 일상에서도 활용 가능성이 높다.

로봇이 민감하고 다양한 형태의 물체를 안전하게 잡는 일은 여전히 어려운 과제로 남아 있다. 기존의 팽창형 소프트 그리퍼는 별도의 압축 장치나 구동 메커니즘이 필요해 크고 복잡하며, 비용 또한 높다. 이에 대해 UC 샌디에이고의 기계공학 및 항공우주공학과 교수 닉 그래비시(Nick Gravish) 연구팀은 전혀 다른 접근법을 시도했다. 바로 **줄자(measuring tape)**의 특성을 이용한 로봇 손을 고안한 것이다.

연구팀이 개발한 이 로봇 그리퍼는 **‘GRIP-tape’**라는 이름으로, 이는 Grasping and Rolling In-Plane의 약자다. 구조는 단순하지만 기능은 강력하다. 두 개의 줄자 테이프를 서로 결합하여 형성된 손가락은 각각 독립적인 모터에 의해 구동된다. 줄자의 탄성과 강성을 활용해 필요할 때는 멀리 뻗고, 물체를 잡은 후에는 다시 접어 물체를 가까이 끌어올 수 있다.

이 그리퍼는 부드러운 고무공부터 무르지만 덩어리진 토마토 덩굴, 신선한 레몬과 같은 과일까지 다양한 형태와 강성의 물체를 안정적으로 집을 수 있다. 줄자 특유의 유연성과 복원력 덕분에 물체를 손상시키지 않고도 단단히 잡을 수 있으며, 그 자체가 컨베이어 벨트처럼 작동하여 물체를 옮기는 역할도 수행할 수 있다.

“줄자는 부드러움과 강성이 결합된 구조로, 기존의 로봇 그리퍼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메커니즘을 가능하게 해줍니다. 전통적이지 않지만 매우 직관적인 선택이죠,”라고 닉 그래비시 교수는 설명한다.

실험에서는 이 그리퍼가 항아리 뚜껑 열기, 전구 설치, 드라이버 조작 등 다양한 일상 작업도 수행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작은 장애물을 피하거나 불규칙한 표면을 따라 유연하게 조정되는 능력도 탁월하다.

향후 과제와 응용

GRIP-tape은 현재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의 지원을 받아 개발 중이며, 연구진은 향후 버전에 고급 센서와 인공지능(AI) 기반 데이터 분석 기능을 접목시켜 완전 자율 작동이 가능한 스마트 그리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농장에서의 수확 자동화, 위험한 환경에서의 섬세한 조작, 고령자 보조 로봇 시스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폭넓게 활용될 수 있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