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장 3개 크기에 걸쳐 있는 NIF(National Ignition Facility)는 사람의
머리카락보다 작은 부피에 2메가줄의 에너지를 집중시켜 별과 핵융합 반응에서 볼 수 있는 극한 조건을 재현한다. 사진 제공: Wikipedia/Damien Jemison/LLNL
[뉴스에프엔 조남준 기자] 인간의 손이 닿을 수 없는 먼 은하에서 별은 태어나고, 블랙홀은 진화하며, 행성은 형성된다. 이 모든 천체물리학적 사건은 수백만 년에 걸쳐 진행되며, 기존의 관측 장비로는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광대한 우주를 이해하고자 한다. 그 해답이 ‘실험실 천체물리학’이다.
실험실 천체물리학은 강력한 레이저와 플라즈마 실험을 통해 극한 우주 환경을 지구 위 실험실에서 시뮬레이션하는 새로운 과학 분야다. 고밀도 에너지와 압축 기술을 활용해 별의 형성, 행성 내부 구조, 초신성 폭발 등 실시간으로 관측 불가능한 현상을 인공적으로 재현함으로써 우주를 향한 인간의 이해를 혁신하고 있다.
우주를 실험실 안으로…별의 탄생 과정을 모사하다
대표적인 사례는 별의 요람이라 불리는 ‘항성 보육원’(stellar nursery)의 난기류를 실험실에서 재현한 연구다. 영국 러더퍼드 애플턴 연구소의 ‘벌컨(Vulcan)’ 고에너지 레이저 시스템을 통해, 연구팀은 초음속 플라즈마 제트 충돌 실험을 수행했다. 이 실험은 분자 구름 내에서 별이 형성되는 극한 환경을 충실히 재현했으며, 별의 탄생에 있어 난기류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이론을 실험적으로 입증했다.
실험에서 관측된 얇고 길쭉한 고밀도 플라즈마 구조는 실제 우주에서 별이 태어나는 분자 구름의 형태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이는 천체물리학적 난기류가 어떻게 성간 물질을 별로 응축시키는지를 보여주는 직접적인 증거로 평가된다.
초신성과 블랙홀까지…레이저로 우주의 비밀을 해부하다
미국의 ‘국립점화시설(NIF)’은 축구장 3개 크기의 실험 공간에서 2메가줄이 넘는 에너지를 머리카락보다 작은 부피에 집중시킨다. 이는 목성 내부의 압력보다 높은 조건을 재현할 수 있으며, 블랙홀 강착이나 초신성 충격파 연구에 활용된다.
또한, Linac Coherent Light Source와 유럽의 X선 자유전자레이저(European XFEL)는 극초단 X선 펄스를 통해 극한 밀도 조건에서 물질의 구조와 거동을 분석할 수 있다. 이는 고에너지 밀도 물리학뿐 아니라 재료 과학, 고온초전도체, 핵융합 연구 등 다양한 분야에 파급력을 미치고 있다.
실험실 천체물리학은 단순한 시뮬레이션을 넘어, 우리가 관측할 수 없었던 우주의 ‘진짜’ 모습을 밝혀내는 도구로 진화하고 있다. 향후에는 행성 내부의 구조를 밝히는 음속 실험, 극한 조건에서의 온도 측정, 플라즈마 내 열 흐름 검증 등 더욱 다양하고 정밀한 연구로 확장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