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전자전, 난(蘭) 치는 청년..."굿즈(Goods)화 풍란 전파한다"

조재연·조성호 부자 풍란 명품화 기술 집약 집중
22대 국회 개원 기념 난의 세계 특별전 기획 추진

김규훈 기자 승인 2024.07.11 17:05 | 최종 수정 2024.07.11 18:10 의견 0

[뉴스에프엔 김규훈 기자] 사군자의 하나로 향기와 고귀함의 찬미 그리고 충성심과 절개의 상징인 난초. 깊은 산중에서 은은한 향기를 멀리 까지 퍼뜨린다 하여 백해(白海), 정일품(正一品), 소풍(笑風), 천설(天雪), 옥향(玉香), 유영(侑映), 대응환호(大鷹丸縞), 부귀전(富貴殿) 등등 귀한 이름으로 불리운다. AI 시대, 풍란(sickle neofinetia, 風蘭)이 각광을 받고 있다. 난을 키울수록 가치와 재미(?)가 더한 반려식물이 재화를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풍란 하나에 수억 원을 호가할 정도로 '부르는게 값'이라는 작품들은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다.
'금태크도 아닌 난테크' 일반 시민들에게 소위 풍란을 잘 키워서 경제적 가치 트렌드로 관심을 사고 있다. 이런 작품 만들기에 인생을 건 청년(조성호)과 그의 아버지(조재연)를 만났다.


올해 24살인 조성호 군은 풍란을 키운다. 같은 또래로 보면 국내 유일하다. 그는 국립농수산대학교를 졸업했다.

조 군의 부친 조재연 대표는 반도체 장비 제조 사업 중 취미로 시작한 풍란 가꾸기, 20년 전풍란 잎을 만지고 다듬는 모습이 고스란히 아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부전자전 두 사람은 우리나라 풍란, 단일 품종으로 일본을 넘어 세계 속으로 나아겠다는 포부다.

반려식물로 힐링하는 플랫폼을 구축해 청년 일자리와 병행한 스마트업으로 세계화에 'K-풍란' 컨텐츠를 일으키겠다고 했다.

지난 토요일, 부자지간 작품을 비롯해 수십여 명의 회원들이 정성을 쏟아 빚은 풍란 작품전시 공간을 찾았다.

경기도 평택시 진위면 어진로 48번지에 위치한 '나란희'는 풍란꽃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이곳에 들어선 순간, 고혹적이고 산뜻하면서 표현하기 힘든 풍란꽃향기가 코끝으로 찡하게 스며들었다.

'나란희'는 '둘 이상 함께'하는 뜻으로 나란히와 풍란의 란(蘭), 기쁠 희(喜)를 따온 이름이다.

조재연 대표는 “풍란 하나 잘 키우면 화날 일도 없고 그 자체만으로도 평화스럽다.”고 좋은 점을 언급했다.

나란희 전시 및 작업공간은 약 600평 규모, 한 공간에 무려 1000여 개의 풍란들이 빼곡하게 차 있었다. 시장 가격대로 평가하면 100억 원이 넘는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1억 원을 호가하는 풍란이다. 우아함 자태를 뽐내며 시선을 사로잡았다.

나란희는 풍란 단품종만 키우는 인큐베이터 역할까지 하고, 난(蘭) 재태크에 뛰어든 투자자들을 위한 별도로 작업장인 가두리공간까지 분리돼 있었다.

현재 30여 명의 투자자들은 자신의 난을 키우는 가두리 내에는 십여 종의 각각 닉네임이 붙여져 있었다. 투자자들은 풍란들을 마치 갓난아이 손 만지듯 정성을 쏟고 있었다.

조재연 대표는 "풍란은 착생난초로 해안과 섬지역 바위틈에서 인간의 손을 타지 않는 곳에만 자라온 관생초인데 어느 날 씨가 말랐고(불법 채취) 이젠 희귀하다보니 그 가치를 귀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조 대표는 “아름다움은 두말 할 나위없고 향기도 좋아 일본은 막부시대인 500년 전부터 윗사람에 바치는 전통이 내려왔다.”고 말한다.

막부(bakufu, 幕府)시대 12세기에서 19세기까지 쇼군을 중심으로 난을 받쳤다.

이런 영향 때문인지 우리나라는 승진, 영전했을 때 난을 전하는 축하 풍토가 이어졌다. 지금은 싼 대만 등지에서 저가의 동양난을 들여와 가치를 떨어트리는 원인이 되고 있다.

조 대표는 풍란을 만지기 시작한 이유를 “회사 일은 늘 스트레스 받았고 우연히 풍란을 보게 됐을 때 마음이 안정감을 채워져 그때부터 풍란 키우기에 집중했다.”고 밝혔다.

그는 가두리 밖에 앉아서 수많은 풍란을 바라봐달라고 취재진에게 요구했다.

“편안하죠. 이렇게 앉아서 커피 한잔 마시며 30분이고 1시간이고 있다 보면 머리는 맑아진다.”고 했다.

'풍란 + 재태크'와 연결고리에 대해서, "재태크 참여자는 가정주부도, 직장인도 사업하시는 분도 다양하게 참여하고 있다. 직업을 꺼리는 분도 있는데 이곳은 '난테크'"라고 불린다고 했다.

풍란 재태크로 국내에서 한 해 거래되는 것만 약 300억에서 500억 원은 예측되고 있다.

조 대표는 “풍란 거래는 국내보단 해외가 더 많다.”며 “북미, 일본, 대만, 중국, 러시아, 멕시코, 유럽 등 최근에는 중동 부호들이 풍란의 매혹에 빠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일본 관상용 풍란은 원래 한국 토종들이다. 한국산 풍란 여러 종들을 다 빼앗아 갔고 대신에 우리는 춘란을 대신했다.

조 대표는 “해외에서 가격대는 천차만별이지만 한국에서 풍란을 육종 하시는 분들 중 정말 탁월한 분도 많다.”며 “이 분들이 K-풍란의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고 했다.

풍란은 한중일 삼국 모두 같은 종들이다. “DNA는 하나다. 역사가 깊어지면서 개발 방식이 달라졌다. 우리는 A라는 방향으로 가면 일본은 B나 C로 가고 약간 방향은 틀린데 기본 틀은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 중 하나인 '부귀란'은 일본 부자들이 키우는 난초에서 유래됐다.
부자들이 키우는 귀한 난초는 값어치가 있고 일본은 매년 엄청난 거래량이 이뤄진다. 우리나라는 난 관련 대통령상은 없는데 일본은 총리상까지 있을 정도다.

조 대표는 “어릴 적부터 제 아들이 제가 난을 가꾸는 걸 보고 배운 영향을 이어받아 다행”이라며 “앞으로 주변 사람들이 자연을 소중하게 여기고 난을 통해 위안과 위로, 같이 어울림 삶의 공간을 만드는 게 제 꿈”이라고 했다.

난 때문에 희비(喜悲)가 엇갈린 에피소드도 흘렸다.

최근 경남 창원에서 우리 사이트를 보고 거래가만 1000만 원, 2000만 원 풍란 주문이 들어왔다. 당사자는 방문하지 않고 택배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1~2만 원짜리도 아닌데," 결국 엄청나게 (포장)신경 써서 보낸 일도 있었다.

또 하나는 축하용 대명사인 동양난 이야기다.
동양난은 대만 중국에서 냉장, 저온 처리해 들어온다. 약품 처리후 강제로 꽃 피워 7만 원에서 15만 원 사이에 팔리고 있다. 판매 원가는 10%도 안 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동양난 특성상 꽃 한 번 보고 거의 죽는다. 화분도 폐기물 처리해야하는데 버리기도 힘들다.

현재 개량화된 풍란은 선물용으로 10만 원부터 100만 원까지 거래되고 있다.
조 대표는 "저희 풍란은 다른 난초들은 다 버려도 우리 풍란은 안 버릴 정도로 품격이 있고 보면 볼수록 멋지다."고 자랑했다.

국내 풍란 시장은 평균 10만 원 대, 100만 원대로 제법 나간다고 귀뜸했다. 특히 “풍란 가치 기준은 명확하다. 여기서 난테크가 작동된다. 국내 하나뿐인 유일한 잎 모양이나 색감을 귀하게 여긴다. 아름다운 자태는 절로 나온다”고 설명했다. 이런 노력은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나갈 때 몸 가꾸는 것과 같다.

조 대표의 아들 조성호 군은 “원예 환경시스템학과를 전공했고 농수산대를 졸업하고 현재 평택농업기술센터 농업대학에 재학중”이라고 말했다.

조 군이 풍란의 매력에 눈을 뜬 건 엄청난 행운이라고 던졌다.

그는 “제 나이에 풍란을 전문적인 공부와 재배 비법을 배우는 건 비공식적으로 세계 최연소”라며 “일본 내에서 전문적으로 하는 나이가 최소 45세 쯤”이라고 했다.

우리나라만의 풍란 보호와 난문화와 재배기술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더 높은 공부하겠다는 마음을 그대로 비췄다.

아버지를 어깨너머로 배웠지만 배양 육종 기술력 습득에는 국내 풍란의 권위자인 문향원 유성태 선생의 힘이 켰다.

"어찌 보면 유성태 스승님으로부터 새벽 2~3시까지 다른 사담 없이 공부만 했고, 풍란에 대해 공부량은 너무 많고 재밌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난 종류만 수천 가지, 최고의 권위자가 되려면 난 하나하나의 특성을 다 기억하고 평가도 할 수 있어야 되고 외워야 될 게 많아 힘들다고 털어놨다.

최근 들어 자신감이 붙었다. "이젠 멀리서도 쟤가 뭐구나?, 특성 파악을 하니까 명패 없어도 알겠다"고 미소를 띠었다.

그는 "난을 친다고 말을 한다. 우리 토종식물 홍도 퐁란이 무분별한 채취로 사라져 안타깝다."며 "우리 풍란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자연의 소중함도 배움으로 실천하는데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더 나아가 또래 친구들과 함께 우리 풍란을 세계로 뻗어가도록 스타트업, 수익 창업과 풍란 문화를 K-팝처럼 전파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나란희에서 주최한 동행전은 수많은 풍란들은 경기도, 평택시 등 지원과 풍란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노력한 결실로 일반인에게 공개했다.

풍란 시장 확산 입장도 밝혔다.

반려식물 풍란은 변함없는 멋스러움과 심신 안정을 선사하고 특히 고령화 사회, 심신 치유의 역할도 가능하고 관련 전문직종으로 저변을 넓히는데 초점을 맞췄다.

풍란 하나를 가지고 문화콘텐츠 구상에 대해 처음으로 오픈했다.

조 군은 “전국 최초로 패션 명품 브랜드사, 최고 커피브랜드와 콜라보 작업의 밑그림을 그렸다.”며 “굿즈(Goods)화로 젊은 세대들에게 풍란의 가치를 알리겠다.”는 계획도 소개했다.

22대 국회 개원을 기념해서 풍란의 올바른 난의 세계를 선보이는 특별전시기획도 갖고 싶다고 했다.

조 군은 “풍란은 세대를 넘나들고 조금만 집중하면 집안에서도 빼어난 제품을 키울 수 있다.”며 “40~50대의 전유물에서 20~30대를 겨냥하겠다.”고 강조했다.

풍란을 죽이지 않고 잘 키우는 비결을 물었다.
죽는 이유는 “과한 습도”라며, “어느 정도 마르고 다시 적셔주고 마르면 적셔주고 반복이 돼야 잘 큰다. 안 마른 상태에서 또 물이 들어가고 썩게 된다.”고 말한다.

풍란도 기후위기에 민감해졌다.

“식물학적으로 반그늘에서 자생 식물로 썩은 나무 밑, 아니면 우람한 나무 밑 그늘에서 살았던 애들이라 아무래도 기후가 좀 악화되고 더위가 지속되면 살기 힘들 것”이라고 말한다.

“처음 풍란이 아무런 무늬가 없던 애가 무늬가 생기면 가치가 1이었던 게 10만, 천만까지 껑충 뛰는 경우가 생긴다.”고 말했다.

또한 “농업도 똑같다. 농업을 하는 친구들도 지금은 가치가 ‘1’이지만 풍란 무늬처럼 노력을 하다 보면 수십 배 수만 배 가치까지 늘어 나는게 진리”라고 또렷하게 주장했다.

그는 이미 풍란계에서는 고수 반열에 들어선 듯 솔직담백하게 표현했다.
최근 일본 풍란시장을 견학한 소감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한일 양국의 풍란을 고가의 자동차로 비교했다.

한국의 난전시회를 가면 페라리, 람보르기니, 벤틀리처럼 세련되고 예쁜 풍란들이 많다. 하지만 일본 풍란은 올드카 느낌, 역사가 더 깊다 보니 무게감으로 스며들었다고 양국 풍란의 분위기를 정리했다.

조성호 군은 “일본에는 에도막부시대부터 내려온 난 종자가 있을 정도”라며 “대한민국의 풍란 역사는 맥을 끊어져 짧지만, 제일 중요한 풍란의 희소성만 갖추면 해외 시장에서 그 진가를 경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풍란은 반려식물 중 '으뜸 보물단지'”라며 환하게 웃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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