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에프엔 김익수 기자] 유럽연합의 지원 아래, 바닷물과 폐수를 활용한 녹색 수소 생산 기술이 상용화에 한 발 더 다가서고 있다.

최근 외신에 따르면 아일랜드 골웨이대학교 주도 하에 진행 중인 ANEMEL 프로젝트는 해수와 폐수처럼 정수하지 않은 ‘더러운 물’에서도 고효율 녹색 수소를 생산할 수 있는 차세대 전해조(electrolyser)를 개발 중이다. 기존 수소 생산 기술의 비용, 자원 소모, 환경 유해성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길을 모색한 것이다.

ANEMEL은 유럽혁신위원회(EIC)의 지원을 받아 유럽 전역의 9개 기관이 참여하는 협력 프로젝트로, 희귀 금속 사용을 줄이고, 폐기물 재활용 가능성을 높인 차세대 음이온 교환막(AEM) 기반 전해조를 개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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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물 없이도 가능한 청정 수소

전통적인 수전해 시스템은 고농도의 수산화나트륨 같은 강염기나 고도로 정제된 초순수가 필요해 설비 위험성과 운영 비용이 높았다. 특히 PEM(고분자 전해질막) 방식은 희귀 금속인 이리듐, 루테늄 등을 사용해야 해 경제성이 떨어진다.

반면, ANEMEL은 저농도 알칼리 환경에서 작동하는 AEM 전해조를 채택, 해수처럼 염분이 있는 저품질 수원에서도 작동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이는 미세한 촉매 성능 저하에도 염소 발생과 같은 부식성 반응을 유도하지 않아 내구성과 안전성 측면에서 큰 장점을 가진다.

“전해조의 혁신이 수소경제의 열쇠”

프로젝트의 책임자인 Pau Farràs 박사는 “우리가 목표로 삼는 것은 기존보다 훨씬 튼튼하고 수명이 긴 전해조”라며 “그것만이 화석연료 기반 수소와 진짜 경쟁할 수 있는 친환경 수소 생산의 기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ANEMEL 팀은 최근 1kW 규모의 전해조 설계와 시뮬레이션 최적화에 성공, 고효율 MEA(멤브레인-전극 어셈블리) 시스템을 구현했다. 특히 스위스 EPFL 연구팀은 10A/cm²라는 초고전류 밀도에서 800시간 이상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AEM 시스템을 구현해냈으며, 이는 기존 기술 대비 약 50만 배에 달하는 성능 향상을 의미한다.

단일 셀을 넘어, 산업용 스택으로

현재 ANEMEL은 단일 셀 수준의 실증을 넘어 모듈형 다중 셀 스택 구조로 확장하는 중이다. 향후에는 수십 그램 규모의 전기촉매와 제곱미터 단위의 멤브레인 생산이 가능하도록 제조공정을 대형화할 계획이다.

특히, 독일 베를린공대(TU Berlin)와의 협업을 통해 염분 조건에서 단일 셀을 작동시키는 데 성공했으며, 이는 향후 해수 기반 대규모 수소 생산의 실현 가능성을 보여주는 핵심 성과로 평가된다.

“협업이 곧 성공의 공식”

ANEMEL의 강점은 학계-산업계-다국적 협력에 있다. Farràs 박사는 “하나의 기관이 모든 기술을 보유할 수는 없다. 다양한 기관의 전문성을 연결해야만 실제 작동 가능한 기술로 완성할 수 있다”며 협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참여 기업들의 제조 경험과 스케일업 노하우는 연구 성과의 산업 현장 적용 가능성을 크게 높이고 있다.

녹색 수소, 해수로부터 시작된다

ANEMEL은 내년까지 해수와 폐수를 이용한 AEM 전해조의 실증을 마치고, 상용화를 위한 기반을 다질 계획이다. 이를 통해 전 세계 수소 공급망에서 ‘깨끗한 물’ 의존도를 낮추고, 수소경제 전환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핵심 기술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