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에프엔 조남준 기자] 베트남이 중진국의 함정에서 벗어나 고소득 국가로 도약하기 위한 대담한 질주를 시작했다. 그 중심에는 2024년 8월 집권한 토 람(To Lam) 베트남 공산당 총서기가 있다. 그는 향후 5년, 즉 2025년부터 2030년까지를 ‘국가 부상의 시대’이자 ‘결정적인 스프린트 기간’으로 규정하고, 국가적 자원과 정치력을 총동원한 개혁과 성장을 주도하고 있다.
최근 외신을 종합하면 토 람은 단지 경제 성장을 넘어서, 베트남을 아시아의 차세대 경제 강국으로 자리매김시키기 위한 구조적 전환을 추진 중이다. 그가 주도하는 변화는 단순한 정책 조정보다 훨씬 더 급진적이며, 1986년 도이모이(Doi Moi) 개혁 이후 가장 대대적인 체제 개편으로 평가된다.
대대적인 행정 개편…작고 민첩한 국가로의 탈바꿈
토 람의 개혁 핵심은 ‘국가 체제의 슬림화’다. 그는 부처 수를 22개에서 17개로 줄이고, 행정 계층을 축소하며, 공공 부문에서 10만 개 일자리를 줄이는 과감한 관료제 개편을 단행하고 있다. 63개 지방정부를 34개로 재편하고, 지구 단위 행정을 없애며, 코뮌(읍면동) 수를 줄이는 조치도 병행된다.
이러한 구조 개편은 더 빠르고 유연한 정책 결정을 가능하게 하려는 전략이다. 동시에 행정비용을 줄이고, 투자자 친화적인 행정 환경을 조성해 외국 자본 유치 기반을 다지는 효과도 노린다.
인프라·기술 투자에 수십조 투입…성장 가속화 노려
베트남은 수년간 지연되어 온 대형 인프라 사업들을 다시 가동시키고 있다. 대표적으로 670억 달러 규모의 남북 고속철, 중국과의 철도 연결, 2기의 원자력 발전소, 심해항 개발 등 수십조 원 규모의 프로젝트들이 병행 추진된다. 이러한 계획은 물류 병목 해소는 물론, 베트남을 동남아시아의 핵심 운송·에너지 허브로 만들기 위한 전략이다.
또한, 기술 기반 경제 전환도 병행된다. 2024년 12월 베트남 정치국은 국가 예산의 3%를 과학기술과 디지털 전환에 투자하는 결의안을 채택했고, 토 람은 과학기술개발중앙위원회 의장을 직접 맡아 혁신경제 전환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엔비디아, 삼성, 메타 등 글로벌 기술 기업들과의 협력도 확대되고 있다.
'대나무 외교' 속 균형 외교 유지…미중 갈등 속 시험대 올라
베트남은 ‘대나무 외교’라는 유연한 다자 전략을 통해 미중 간의 갈등을 피해왔지만, 최근에는 압박이 심화되고 있다. 미국 트럼프 전 대통령은 46%에 달하는 고율 관세를 전격 부과했고, 이는 베트남의 수출 의존 경제에 직격탄이 되고 있다.
이에 맞서 중국 시진핑 주석은 2025년 4월 하노이를 방문해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에 맞서 공동 대응을 촉구했다. 베트남은 미국과의 교섭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중국과의 인프라·무역 협력을 확대해야 하는 복잡한 외교 방정식에 직면했다. 베트남의 전략적 자율성과 경제적 안정을 모두 지키는 일이 어느 때보다 어려워진 것이다.
도전 과제들…재정 부담, 개혁 리스크, 환경 위기
토 람의 야심 찬 계획에는 상당한 리스크도 뒤따른다. 대형 프로젝트의 재정 부담은 국가 예산에 큰 압박이 되고 있으며, 과거 하노이·호치민 도시철도 프로젝트처럼 예산 초과 및 지연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또한, 급격한 행정 개편은 단기적으로 혼란을 야기할 수 있고, 정책 이행력 저하 및 관료 마비 우려도 존재한다. 환경 문제 역시 심각하다. 2025년 1월 하노이는 세계에서 가장 오염된 도시로 지목되었고, 기후 변화에 대한 높은 취약성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협하는 핵심 요인이 되고 있다.
불확실한 국제 질서 속에서…베트남의 향후 5년은 결정적
토 람은 지금의 시기를 ‘새로운 세계 질서가 형성되는 시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가 말한 ‘질서’가 아니라 ‘혼돈’에 가깝다. 글로벌 무역 전쟁, 다자주의의 퇴조, 지정학적 갈등의 격화 등은 베트남이 의존해온 세계 경제 시스템 자체를 흔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은 2030년까지 중상위 소득국, 2045년까지 고소득 국가 도약이라는 국가 전략 목표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향후 5년, 토 람이 추진하는 고강도 개혁이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여부는 베트남뿐 아니라 글로벌 남반구 개발국들에게도 중요한 이정표가 될 전망이다.